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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강원도

{강원도 철원군} 국보와 보물이 있는 화개산 도피안사

국보와 보물이 있는 화개산 도피안사

 

초딩 친구들과 철원군 12일간 나들이를 하면서 국보와 보물이 산적해 있는

도피안사의 사찰을 둘러보면서 대적광전 내부의 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의 부처님에게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보면서 열심히 기도를 올리기도 하였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에 위치한 도피안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만들어 진 것으로 유래되고 있다.

서기 865년에 도선국사가 화개산 현 위치를 발견하고 국보제63호 철조비로사나불좌상을 봉안하고 보물제223

삼층석타불을 조성한 후,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과 같은곳에 이르렀다 하여 도피안사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도피안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피안으로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피안은 깨달음의 세계를 뜻하며. 도피안사는 서기 865년 통일신라시대 경문왕 5년에 도선 국사가 지은 사찰로서 당시 철원의 향도 1,500명의 지원 속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진 도피안사는 오래된 세월만큼 우여곡절이 많은 사찰로서 유명하다.

조선시대에 재화를 입어 재건하였고 1941년에 사찰을 개수하여 전통 사찰로 이어오다 해방후는 공산치하에, 6.25에 완전 소실된 것을 1957년 육군 제 15사단에서 복원한 후 군부에서 관리 하던 중 민간 관리로 넘어온 후 다시 중건을 하여 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도피안사 주소 : 강원 철원군 동송읍 도피동길 23

 

사진촬영정보

바디 : 캐논 EOS 5D Mark IV (5디 마크4), 렌즈 : 캐논 정품 광각렌즈 RF17-40mm F4 L IS USM

 

 

 

화개산 도피안사의 일주문이다.

 

 

 

도피안사 안내도다.

 

 

 

친구들과 도피안사 경내로 들어서는 모습이다.

 

 

 

도피안사의 전경이다.

 

 

 

도피안사의 아래 느티나무는 수령이 600년이나 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도피안사의 삼층석탑의 우측으로는 수령이 600년이나 된 느티나무가 우뚝하게 서있다.

 

 

 

친구들과 단체로 도피안사의 대적광전 앞에서 사찰을 둘러보기도 하는 모습이다.

 

 

 

도피안사의 전경이다.

 

 

 

도피안사 대적광전 앞의 삼층석탑 보물 223호의 앞에서 관람을 하는 모습이다.

 

 

 

 

도피안사 대적광전의 전경이다.

대적광전 내부에 국보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다.

 

 

 

 

아래 대적광전 내부에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국보63호다

상세한 내용은 상기의 설명 글을 읽어 보면 알 수가 있을 것이다.

 

 

 

도피안사는 국보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삼층석탑이 모두 있는 국보사찰이다.

그 중에서 국보 63호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불상 뒤쪽에 139자에 달하는 명문이 돋을새김 되어있는데,

그 가운데 "咸通六年(함통육년)"이라는 紀年(기년)이 있어 이불상의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다.

불교에서 비로자나불은 태양의 빛처럼 불교의 진리가 우주 가득히 비추는 것을 형상화 한 것으로 광명의 부처를 의미 한다.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상의 높이는 91cm이며, 대좌까지 鑄造(주조)된 특이한 양식이다.

얼굴은 긴 편이고, 귀가 짧으며, 목에는 一線(일선)을 그었을 뿐으로 위엄이 적다.

通肩(통견)法衣(법의)에는 주름이 반복되어 형식적이다.

무릎 폭은 넓으나 두 손이 인체에 비해 작은 편이다.

臺座(대좌)單瓣(단판) 세겹의 仰蓮(양련) 밑에 8각의 中石(중석)이 있고, 그 밑에 귀꽃이 달린 單瓣(단판) 伏蓮(복련) 있다. 개금 및 페인트칠 되어있던 불상을 문화재연구소에서 페인트를 제거하고 전면적으로 남아있던 개금층, 카슈층(옻칠), 석회층을 벗겨내고 귓볼을 고증 처리하는 등의 보존처리를 거쳐 현재는 철불 상태 원형을 되찾았다.

 
 
 

아래의 도피안사 삼층석탑은 보물 223호다.

 

 

 

3층 석탑의 전경이다.

도피안사 3층석탑은 법당 앞에 건립된 높이 4.1m의 삼층석탑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법당안에 안치된 철불상의 명문에 의해 신라 경문왕5(856)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설과,

연화좌대를 사용한 것과 전체 형태의 비례감과 조성수법을 통해 신라하대 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는 설이 있다.

언제 조성되었는지 여부를 떠나 방형 중흥의 신라계 일반형 석탑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탑은 방형 지대석 위에 8각의 기단이 축조되어있다.

기단의 하부에는 8각의 각 면에 안상이 조각되어있고, 그 위에 1장의 돌로 된 갑석이 놓여있다.

또한 갑석위에는 1장으로 된 8각의 연화대석이 놓여있는데 이곳에는 단엽 16판의 복련(覆蓮:아래로 향한 연꽃)이 돌려져있다. 그리고 그 윗면에는 각형 2단의 괴임으로 써 위의 면석을 받게 하였는데, 면석에는 아무런 조식도 없다.

기단 상부에는 각형의 2단 받침과 단엽 16판의 양련(仰蓮:위로 향한 연꽃)이 조식된 갑석이 조성되어있다.

그리고 그 윗면에는 방형의 괴임3단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이와 같은 8각 이중기단위에 3층의 탑신부 형태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법당안의 철조비로자나불과 마찬가지로 9세기경에 새롭게 일어나는 개성적인 지방 호족문화와 관련이 있다.

탑신은 일반형 석탑에서와 같이 방형이고 각 면에는 양 우부가 있으며, 옥개와 옥신은 각기 한 돌로 되어있다.

옥개받침은 각형이 아닌 반원형으로 제1층은 4단이고, 2.3층은 3단으로 되어있다.

상륜부는 보반만이 남아 있다.

 

 

 

 

도피안사 종각이다.

 

 

 

삼성각의 전경이다.

 

 

 

극란보전의 전경이다.

 

 

 

여학생들은 도피안사 3층 석탑의 보물 223호 앞에서 인증샷으로 한 컷 담아보았다.

 

 

 

 

기와불사를 접수 받는다

기와불사 1장에 1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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