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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대구시 동구} 팔공산 자락의 남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부인사의 가을풍경

 팔공산 자락의 남쪽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부인사의 가을풍경


친구와 둘이서 하루에 4대 사찰을 방문하면서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이곳의 부인사다.

부인사는 팔공산 순환도로의 근처에 자리 잡고 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지가 있는 장소와 그다지 멀지가 않는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잠시 들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부인사는 팔공산의 남쪽 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찰의 뒤로는 팔공산이 우뚝하게 솟아 

올라와 있어서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사찰로 불리기도 한다. 가을에 팔공산의 단풍이 곱게 물들 때는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기도 하다.


대구지역의 대표적 명찰, 부인사는?

대구의 팔공산(八公山) 남쪽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부인사(符仁寺)는 이 지역의 대표적 명찰 가운데 하나이다.

 행정구역상 소재지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5번지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까지의 부인사 연혁은 자세히 전하는 내용이 없다. 다만 고려 말의 여러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부인사는 오랫동안 거찰의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부인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양쪽으로 돌담길이 이색적인 풍경을 더해주기도 한다.






팔공산 부인사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5번지이며,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의 말사로 속해 있다.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버린 좌측의 옛 절터가 고스란이 남아있기도 하다.

부인사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부인사의 담장은 기왓장으로 마무리를 하면서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기도 하다.







부인사의 아름다운 전경이다.






이곳의 부인사는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39개의 부속암자를 관장하였고 2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도하였다고 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부인사의 경내에는 단풍이 울긋불긋 곱게 물들어서 산사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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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사 대웅전의 전경이다. 

고려시대에는 거란의 침입을 막기 위해 판각한 초조대장경을 이곳에서 보관하게 했다.

초조대장경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보다 200년이나 앞선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고려의 성종과 현종때 세 차례에 걸쳐 침입한 거란군을

 불교의 신앙으로 물리치고, 국운의 장구함을 염원하기 위해 임금과 신하가 마음을 모아 대장경판을 만들어 이곳 부인사에 보관해왔다. 
 그러나 이 경판은 몽고 침입때 모두 불타 버렸다. 이곳은 바로 고려의 호국 정신과 민족문화의 큰 상징인 초조 대장경판을 소장하고 있던

곳이다. 또 이곳 부인사는 고려시대 무신집권에 항거하여 봉기한 승려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부인사 종각의 전경이다.







같이 동행한 친구는 불교신자로서 부인사의 대웅전을 배경으로 한 컷을 담아보기도 한다.

하루에 4대 사찰을 다니면서 마음이 푸근하기도 할 것이다. ㅎㅎ






명부전 앞마당에 자리한 이 석등의 공식 명칭은 ‘일명암지() 석등’이다.

현재의 부인사에서 동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이름을 알 수 없는 절터에 있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절터에 석탑의 부재, 불상대좌

 등과 함께 흩어져 있던 것으로 은통당 부도와 똑같은 경로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안치되었다고 한다.





부인사 명부전의 전경이다.






부인사 산신각의 전경이다.






부인사 영산전의 전경이다.






부인사의 일부 전경이다.






부인사의 대웅전 뒤로는 팔공산의 단풍이 곱게 물들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더해주기도 한다.





부인사의 일부 전경이다.






부인사의 사찰 주변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부인사의 뒤로는 팔공산이 자리 잡고 있어서 절터가 역시 명당의 자리이기도 하다.






부인사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부인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사찰로 추정되며, 절이 한창 번성할 때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승려들만의 승시장(僧市場)이

섰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이 탑은 금당터 주변에 쌍탑으로 건립된 2기의 석탑 중 서쪽에 있는 탑으로, 1966년에 복원되었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는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지고 그 받침돌만 남아있다. 기단은 각 면마다 기둥모양을

 새기고 윗면에 2단의 괴임을 새겨 윗돌을 받치게 하였다. 탑신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고, 지붕돌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가

흐르며, 밑면에는 5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부드럽게 치켜올라갔다.
통일신라 후기 즈음에 세운 탑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아래 사진의 부인사 석등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부인사에 있는 석등의 전경이다.

전체높이 308, 하대석 1130, 간주석 높이 112.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다.

이 석등은 지대석(地臺石하대석·간주석(竿柱石상대석·화사석·옥개석으로 결구하여 일반적인 석등의 양식을 충실히 구비하였는데, 지대석과

 하대석은 1매석으로 조성하였다.밑으로부터 방형으로 된 기대석(基臺石)의 각 측면에는 두 개씩의 안상이 음각되었고, 그 상면에는 8판복엽

(八瓣復葉)의 하대석을 부조하였으며, 그 상면으로 간주석을 받치기 위한 3단의 8각받침을 다시 만들고 중앙에 간주석을 꽂기 위한 삽입공을

 만들었다.간주석은 단면 8각형으로서 전형적인 신라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화사석을 받치고 있는 상대석은 하면에 2중의 8엽연판과 8각의

 괴임을 3단으로 만들었다.





부인사의 입구 주차장 부근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서 산사의 풍경이 더욱더 아름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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