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나와 골프이야기 ♣/가족 갤러리

존경하는 아버님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면서~~

 

 

 

 

존경하는 아버님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면서~~

 

 

평생에 공직에 몸을 담고 계시면서 19983月末로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하시고

지금까지 건강하신 몸으로 즐거운 삶을 살아가시다가 애석하게도 향년 80세로 서기 2016722일 오전 1113분에 운명을 달리하시기도 하였다. 평생 동안 자식 뒷바라지를 하시면서 고생만 하시고 유달리 자식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많으신 분이고 늘 인자하신 모습으로 인정도 많으셨다. 그래서 돌아가신 아버님의 그늘이 지금도 생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짠하기도 하지만 인간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저 세상으로 떠나가야만 하는 운명이기에 스스로 마음을 달래보기도 한다.

 

주자십회에 보면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라는 좋은 말도 있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친다는 말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하면 돌아가신 뒤에 백 번 뉘우쳐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아버님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무더운 삼복더위에 3일장의 장례식을 무사하게 마치고 먼 훗날을 기리기 위하여 나의 블로그에 포스팅을 해보기도 한다.

 

아래의 내용은 아버님이 살아생전에 비 문안을 미리 작성하셔서 장남인 본인에게 맡겨두고 돌아가시면 산소에 비석을 세우라고 하시기도 하였다. 그래서 문학박사이신 집안 아저씨에게 비석 문안을 다시 번 검토 중이다. 비 안이 손색이 없으면 비를 만들어서 49재 이전에 아버님의 산소에 비석을 세우기도 할 것이다.

 

 

碑 文 案

面長 昌寧成公諱千慶之墓

창녕의 靈山인 화왕산의 精氣가 서려있는 대지면 귀동마을 案山자락에

한때 주림을 탈피하고 나라 發興을 위한 새마을운동의 한 先鋒에서 잠을 설쳐가며 노력하셨던 분이 이곳에 고이 잠들고 계신다. 그의 千慶이요 靜剛이요 成氏昌寧이니 始祖 中尹公 諱仁輔25世孫이며 高麗 忠臣 寶文閣 直提學 貞節公 諱思齊19世孫이고 通德郞公 諱軾16이며 軍資監僉正公 諱厚慶13世孫으로 高祖 諱周烈 曾祖諱珏鎬 祖諱安永 考諱樂殷이며 昌寧張大植이시다 西紀1937328日 大池面 孝亭里727番地에서 11女中 둘 째로태어나 어려서부터 姿稟異凡하고 聰明勤實하여 앞날이 囑望되던일찌기 昌寧農業高等學校卒業하고 1969年 慶尙南道施行 第1回 地方公務員 採用試驗合格하여 昌寧郡廳 內務課行政係 書記出發하여 1976年 昌寧郡公報室 公報係長 殖産課蠶業係長 內務課福祉係長 農産課特作係長 農漁村開發係長 農事係長等을 두루 거처 1991年 昌寧郡議會 初代 專門委員으로 昇進勤務하다 1992유럽5個國(영국,이태리,독일,스위스,프랑스)1997年 東南亞2個國(태국,싱가폴)視察하였으며 19933부터 19983까지 昌寧郡城山面 面長으로歷任하면서 慶尙南道內에서는 처음으로 山地사과團地內 水源開發 全地域에 점적식 스프링쿨러를 成功的으로 設置하는等 面政心血傾注하여 牧民官으로서 面民愛情으로 보살폈으며 그 외 많은 功績을남기어 龜鑑이된 功勞昌寧郡守, 表彰2回 慶尙南道知事, 表彰4回 農協中央會長, 保健社會部長官, 內務部長官, 大統領, 表彰等을 받았으며 또한 退任을 아쉬워하면서 城山面民들의 各個各層管內外20余個 機關團體에서 感謝牌授與하는에좋은 본보기가 되기도 하였으며 19983月末名譽로운 停年退任을 하여 鄕里의 벗들과 後背敎導勞力해 오시다가 哀惜하개도 享年 80西紀 20160722日 逝去 하시니 大池面孝亭里 山90番地 槐洞 案山 坐安葬하였다 婦人 瑞興金氏 寒暄堂 宏弼後 克植女와의 사이에 5男妹를 두었으며 長男 耆孝 次男 0憲 三男 耆宅 長女 耆淑 次女 耆子 큰사위 陵城 具滋千昌寧郡議會 第4,5,6代 郡議員으로 當選되어 産業建設 委員長을 두루 거쳐 昌寧君議會 議長을 역임하고 被選,둘째사위 慶州 李相乃이고 孫子長孫0錫 美花 昊錫 貞花 東錫 泳錫 外孫子具善美 具載本李知硏 李承勳이다, 住民을 사랑하는 高邁牧民精神滅私奉公透徹奉仕遺德을 길이 後世하고저한 時代行政最 一線에서 를 같이한 면장 98同友會員一同이 뜻을 모아 이 를 세우니 은 이제 갔어

 

도남기신 遺蹟은 이 定石에 영원하여 길손들의 발걸음을 멈추리라

 

西紀 201607月 日

安東 金 浩 鎰 謹撰

昌寧君 邑 面長 98同友會員 一同

 

 

 

 

고향인 창녕군공설장례식장에서 3일장으로 조문객을 맞이하기도 한다.

 

 

 

 

 

 

7월 24일(일요일) 3일장으로 장례식장에서 운구를 하기도 한다.

 

 

 

 

 

고향인 창녕군 대지면 효정리 선영에서 고이 잠들기도 한다.

고향의 정기어린 명당의 자리에 고이 잠들면서 앞으로 후손들을 잘 보살피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비 문안이 완성되면 우측에 비석을 세우기도 한다.

 

 

 

 

 

 

아버지가 돌가 가시고 43일만에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비석의 정면이다.

 

 

 

 

 

비석의 한쪽 측면이다.

 

 

 

 

비석의 뒷면이다.

 

 

 

 

 

 

비석의 한쪽 측면이다.

 

 

 

 

 

 

 

 

43일만에 가족들과 조촐하게 비석 제막식을 올리고 기념으로 한 컷을 담아본다.

 

 

 

 

 

묘지는 고향의 선영에서 화장을 하여 평장으로서 이렇게 안장을 하기도 한다.

상석에는 아무런 글이 없다.

비석을 별도로 세우기 때문에 상석에는 글을 새기지 않는다고 한다.

"남좌여우"의 원칙에 따라서 아버님은 왼쪽에 안장이 되고

우측의 가묘는 먼 훗날에 어머님이 돌아가시면 이곳에 안장을 할 것이다.

 

 

 

 

 

임휴사 이곳의 대웅전 법당에 49재를 모시기도 하였다.

 

 

 

 

 

장례식을 마치고

조계종 임휴사의 사찰에 아버님의 49재를 올리기도 하였다.

돌아가신 날의 7일 째 되는 날인 7월 28일 초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한국도로공사의 조기와 행정고시 동기회의 조기도 장례식 날 빛내주기도 하였다.

 

 

 

 

 

 

행정수도 1번지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인 국무총리님도 화한을 보내오셨다.

 

 

 

 

 

 

 

경기도지사님도 화환을 보내오셨다.

 

 

 

 

 

 

서울 경희의료원  임영진 원장님도 화환을 보내오셨다.

 

 

 

 

 

 

 

한국도로공사 김학송 사장님도 화환을 보내오셨다.

 

 

 

 

 

 

 

아래도 많은 분들이 약 70여개의 화환을 보내오셨다.

감사를 드립니다.

 

 

 

 

 

 

 

 

 

 

 

 

 

 

 

 

 

 

 

 

 

 

 

 

 

 

 

 

 

 

 

 

 

 

 

 

 

 

 

 

 

 

 

 

 

 

 

 

 

 

 

방가방가요 ^**^ 방문을 환영합니다.

좋은하루

눈이 즐거우시면 아래의 (공감) 버튼을 한 번 꾹 눌러주시고 가시면

더 많은 분들이 이 글을 보실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