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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부산,경상남도

{경남 의령}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는 무엇인가 다른 느낌이 있다. // 호암 이병철 생가

경남 의령군청에 업무차 출장을 갔다가 인근에 위치한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로 가본다.

주말과 휴일에는 이곳의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로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하면서 또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찾아오는 이유가 다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호암 이병철 선생은 삼성그룹의 창업자로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온

장본인으로서 천문학적인 부자로 소문이 나기도 한 분이시다. 그래서 호암 이병철 생가로 찾아 와서 기(氣)를 받으로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으로서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기도 한다고 한다. ㅎㅎ

 

본인도 친구와 둘이서 의령에 출장을 간 걸음에 이곳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에 들러서

많은 기(氣)를 받아 부자가 되고 싶은 꿈같은 생각을 가지면서 이병철 선생의 생가를 둘러보며 풍수지리학적으로 기(氣)가 흐른다고

하지만 부자가 되는 길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ㅎㅎ

 

 

한국의 대표 기업가, 호암 이병철선생 생가는?
호암생가는 삼성그룹의 창업자이자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끈 대표적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1851년 호암선생의 조부께서 대지 면적 1,907㎡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호암선생은 유년시절과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의
 시절을 이 집에서 보냈다.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현재의 생가는 안채,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구분되고, 주위로는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 도로명 주소 :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

전화번호 055-570-2403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를 포스팅 하면서 6월 둘 째 날도 힘차게 출발을 한다.

고고

 

 

 

호암 이병철 생가의 안채 배경으로 한 컷

 

 

 

 

 

 

호암 이병철 생가는 상기의 글을 읽어보면 상세한 내용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약력이다.

상세한 약력은 상기의 글을 읽어보면 상세하게 알 수가 있다.

 

 

 

 

 

 

 

호암 이병철 선생()에 대하여
호암 이병철 선생은 1910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났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한 이래 삼성전자를 비롯한 많은 기업을 일으켜 국가경제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1961년에는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를 발의하고 초대회장에 추대되었다.

1965년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삼성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우리의 정신적 자산을 풍족하게 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였고, 1980년대에는 특유의 통찰력과 선견력으로 반도체산업에 진출하여,

 우리나라 첨단산업의 발전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호암선생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의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불모의 한국경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가경제발전을 선도하였다. 또한 선생은 성균관대학교 운영을 통한 인재육성을 비롯, 문화, 예술,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의 발전에 많은 업적과 교훈을 남겼다

 

 

 

 

 

 

호암 이병철 생가지로 가는 길의 정보는 상기의 약도와 주소를 참고하면 될 것이다.

네비게이션의 주소는? :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호암길 22-4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로 가기 전에 이곳의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면 될 것이다.

입구에는 이렇게 넓은 주차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기도 하다.

 

 

 

 

 

 

호암 이병철 생가는 이곳에서 80미터만 가면 있다.

 

 

 

 

 

 

호암 이병철 생가라는 간판이 농촌의 흙담길에 걸려있기도 하다.

역시 농촌의 흙담길이 눈길을 사로잡기도 할 것이다.

 

 

 

 

 

 

호암 이병철 생가의 입구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 개방시간은 10시부터-오후 5시까지 관람을 할 수가 있으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을 하므로 상기의 휴관일을 참고하여야 방문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상세한 내용의 글은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에 굽이도는 농촌의 흙담길의 길모퉁이에서 인증샷으로 한 컷을 담아보기도 한다.

 

 

 

 

 

 

 

이병철 선생의 생가지 바로 옆에는 중제고택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이곳에서 민박도 가능하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에는 이렇게 벽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있기도 하다.

 

 

 

 

 

 

벽화가 이병철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에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소싸움을 하는 벽화가 그려져 농촌의 이미지를 연상하기도 한다.

 

 

 

 

 

 

 

탈춤놀이의 벽화도 한 대목을 한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에는 벽화가 그려져 눈요기에도 좋을 것이다.

 

 

 

 

 

 

이병철 선생의 생가는

지난해 5월 보수공사를 하여 말끔하게 단장을 하여 재개방하는 경남 의령군 정곡면의 삼성그룹 창업주 호암 이병철 생가 전경이다.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부자의 기를 받으로 주말과 휴일에는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고 한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 사랑채의 전경이다.

 

 

 

 

 

 

상기의 사진은 호암 이병철 생가의 안채다,

사랑채, 대문채, 광으로 구성돼 있고, 풍수지리에 의하면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 형상을 한 주변 산의 기가 생가터에 맺혀 있어

지세가 융성한 명당 중의 명당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ㅎㅎ 그래서 삼성의 창업자이신 호암 이병철 선생은 부자가 되기도 하였는가보다.

 

 

 

 

 

 

 

농촌의 우물이다.

도시에는 상수도가 발달이 되어서 물을 수도에 의존하지만 농촌에는 과거에 이렇게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려서

먹기도 하였다. ㅎㅎ

 

 

 

 

 

 

곳간에는 농촌의유물들이 전시가 되어있기도 하다.

이것이 논 밭은 가는 쟁기다.

ㅎㅎ 우리는 농촌에서 태어나 이러한 농촌의 유물들을 너무나 잘 알기도 한다.

지금은 모든 논 밭은 일구어 낼 때는 트렉타로 논을 갈지만 과가 60년대에는 이러한 재래식 농기구로서 논과 밭을 갈기도 하였다.

이러한 농기구에 소가 앞에서 끌어당기도 사람은 쟁기에 의존하여 논과 밭을 갈아 엎는다. ㅎㅎ

 

 

 

 

 

ㅎㅎ 이것은 지게와 짚소쿠리다.

 

 

 

 

 

 

 

농촌의 온갖 잡동사니 유물들이 많이 전시가 되어 있기도 하다.

 

 

 

 

 

 

이것은 60년대에 농사를 지어서 벼와 보리를 수매하기 위한 가마니다.

본인도 농촌이 고향이라서 옛날 지난 과거에 벼를 농사 지어서 수매를 하기 위하여 이렇게 가마니에 새끼줄을 꼬아서

가마니를 묶기도 하였다.

 

 

 

 

 

 

이것이 60년대에 사용을 하는 눈금 저울이다.

지금은 전자가 발달을 하여 모든 개량을 할 때에는 전자저울을 이용하지만 과거 60년대에는 이러한 재래식 저울에

의존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ㅎㅎ

참말로 오랜만에 보는 눈금저울이 지난 과거를 다시금 상기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농사를 지어서 개량을 하는 재래식 되와 말이다.

좌측이 되고 우측이 말이다. ㅎㅎ

 

 

 

 

 

 

 

지난 과거의 장독대가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ㅎㅎ

 

 

 

 

 

 

 

온갖 농촌의 농기구 유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기도 하다.ㅎㅎ

옛날에는 이러한 재래식의 농기구로서 농사를 지으며 우리의 선조님들은 늘 고생을 많이 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벼를 수확하여 재래식으로 탈곡을 하는 농기구이다.

본인도 60년대에 이러한 농기구로서 시골에서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ㅋㅋ

 

 

 

 

 

옛날에는 이러한 장독대에 된장을 담아서 보관하기도 하면서 시골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ㅎㅎ

 

 

 

 

 

 

동행한 친구도 호암 이병철 생가의 안채에서 인증샷을 하기도 한다.

 

 

 

 

 

 

이병철 생가의 정원에는 깔끔하게 단장이 되어 있으며 나무들이 신록의 푸르름을 더해주기도 한다.

 

 

 

 

 

ㅎㅎ 이병철 생가의 이 바위틈에서 기(氣)를 받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이 집은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가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호암 이병철 생가의 안채와 사랑채가 보이기도 한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 전경이다.

 

 

 

 

 

 

농촌의 돌담길이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전형적인 농촌의 돌담길과 더불어 벽화가 그려져 있는 호암 이병철 생가로 가는 길이다.

 

 

 

 

 

 

농촌의 이미지를 풍기는 시골의 골목 길이다.

 

 

 

 

 

호암 이병철 생가의 부잣길이다.

 

 

 

 

 

 

호암 이병철 선생의 생가로 가는 길에는 벽화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마을 길에는 이렇게 안내표지판이 잘 되어 있으며 돌담길이 시골의 느낌을 주기도 한다.

 

 

 

 

 

소 위에 어린아이들의 동심이 묻어나는 농촌의 느낌을 연상하면서~~~

 

 

 

 

 

농촌의 들녁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면서 정겨운 시골의 흙내음이 물씬 풍기기도 한다.

 

 

 

 

 

 

호암 이병철 생가지의 주차장 주변에도 보리가 누렇게 물들고 농촌의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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