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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꾼의 이야기 ♣/섬 산행 및 섬 여행지

{전남 여수} 거북을 닮아서 지어진 섬이라고 불리우는 금오도 비렁길~~

나의 영원한 산꾼인 친구와 둘이서 겨울이 오는 길목에 전남여수 금오도비렁길에 나선다.

금오도비렁길은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서 해안을 따라 걸어보는 낭만적인 길이 지루하지 않을정도로

산꾼들의 매력을 느끼게도 할 것이다.

여행은 가면 갈수록 가보고 싶은 것이 매력이 아닐런지~~

친구와 둘이서 금오도의 비렁길을 마음껏 걸어보면서 대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에 푹 빠지기도 하였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못내 아쉬워하며 눈으로 담아오기에는 미련이 남을 것 같아서 연신 카메라의 셔트를 눌러

사진으로 담아보기도 하였다.

 

 

탐방일시 : 2012년 11월 23일  KJ 산악회와 동행

 

우리는 1코스와 2코스를 종주하면서 약 9km의 4시간을 걸어면서 아름다운 금오도의 풍광을 즐겨 본다.

 

1구간은 기존구간으로 총 길이는 5km이며 1코스 함구미-두포(초포)구간과

2코스 3.5km이며.두포-직포구간으로 나뉘며

2구간은 최근에 개통된 구간으로 총 길이는 9.7km이며 3코스 직포-학동구간, 4코스 학동-심포구간,

그리고, 5코스 심포-장지구간으로 나뉜다.

 

 

 

 "황금(金) 자라(鰲) 같은...찬란한 섬 금오도(金鰲島)"

금오도라는 이름은 섬에 삼림이 울창해 검게 보였기 때문에 거무섬이라 부르다 한자 표기를 하면서 금오도가 되었다는 설과 금빛 거북을 닮아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옛 지도인 '청구도(靑邱圖)''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거마도(巨磨島)라는 이름으로 적혀 있기도 한데 이 또한 거무섬의 이름을 비슷한 한자로 표기한 경우라고 한다. 어쨌든 현대인들이 금오도라고 부르는 이 섬은 면적 24, 해안선 길이 64.5로 우리나라에서 21번째로 큰 섬이다.

 

 

여수 금오도 비렁길 트레킹 곳곳에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섬으로 이뤄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은 전국에서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이다.

목포와 여수 사이 서남해안에는 무려 2300여 개에 이르는 섬이 있다. 그중 여수 금오도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봄철에 특히 주목을 받는다.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풍경의 트레킹 코스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수 돌산도 신기항에서 약 25떨어진 금오도는 섬이 금빛 자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랫동안 출입이 제한돼 섬의 자연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 아름다운 해안과 기암괴석은 오랫동안 숨겨진 비밀처럼 감동을 전해준다. 금오도는 섬을 일주하는 비렁길이 개통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비렁길은 벼랑길의 사투리. 섬 전체 해안선 길이가 64.5인데 그 가운데 18.5구간이 트레킹코스로 개발됐고 이곳이 바로 비렁길이다. 원래 함구미 마을에서 직포까지 총 8.5구간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직포에서 장지까지 약 10구간이 더해졌다. 모두 5개 구간으로 나뉘며 비렁길 전체 구간을 모두 걷는다면 약 8시간 정도 소요된다. 비렁길 1~2구간에는 곳곳에 용두바위와 미역바위, 굴등 전망대, 촛대바위 등 기괴한 모양의 바위들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비렁길 3~5구간에도 바다를 낀 절벽과 해안풍경이 신비롭다.

   

   

 

 

 금오도 신선대의 풍경을  한컷

금오도는 다도해국립공원에 속해 있어 주위 경치가 빼어난 것이 특징이다

 

 

 

 

 

 돌산 신기항에서 금오도로 가는 뱃길에 오른다.

전남 여수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까지 배를 타면 20여 분 소요된다.

 

 

 

 

 

 

출항하는 배 위에서 한컷

겨울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싸늘하게 추운 하루였다

신기항을 출발하면 주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도열하듯 관광객을 반긴다.

 

 

 

 

 

 

 

 

 어부들의 일상 생활이다

 

 

 

 

 

신기항에서 출항하여 25분 후에는 금오도 함구미 마을에 도착을 한다

 

 [함구미 마을의 유래]

마을 서쪽 대대산(大代山) 줄기 끝 부분이 용(龍)의 머리와 같이 생겼다 하여 용두(龍頭)라 불렀고 해안절벽이 아홉 골짜기의 절경을 이룬다 해서 함구미(含九味)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885년 금오도에 민간인 입주(入住)가 허용되자 화정면 개도(蓋島)에서 살던 김해김씨(金海金氏) 김익지 부부가 배를 타고 건너와 처음 정착 했으며 이후 성주배씨(星州裵氏), 남평문씨(南平文氏), 전주이씨(全州李氏), 나주나씨(羅州羅氏) 등이 들어와 숯을 굽고 땅을 일구어 살며 마을이 형성되었다 한다

 

 

 

 

 

 

 비렁길의 안내도

 

 

 

 

 

 

 

비렁길은 함구미 마을 뒤 산길에서 시작해 바다를 끼고 걷는다

 

비렁길은 함구미 마을에서 시작해 남쪽 해안을 따라 금오도의 가장 끝 마을인 장지까지 18.5이어진다. 비렁길은 다섯 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코스는 함구미 마을에서 두포마을까지 5. 2시간 소요되며 가장 인기 있는 코스 중 하나다. 원시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용두바위 부근과 미역널방의 경치는 금오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금오도 비렁길은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에 버금갈 정도로 주변 여건이 뛰어난 트레킹 코스다.

 

 

 

 

 

 

 

 

 

미역널방의 풍경이다

 

 

 

 

 

청옥 빛의 바다와 기암괴석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미역널방이 나타는데 바다에서 채취한 미역을 지게에 지고 와 늘어놓고 말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90m에 이르는 아찔한 절벽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룬다. 기암절벽 위에 서면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남도에는 날씨가 포근하여 11월 말일에도 야생화가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송광사 절터에 닿는다.

이곳은 고려 명종 25년에 지눌이 금오도에 절을 세운 기록이 있어 이곳 절터를 송광사 터로 추정하고 있다. 신선대는 신선이 쉬었다 갈 수 있을 만큼 주위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기암절벽의 모습이 아찔해서 발이 후들거릴 정도다. 절벽 아래에서 부는 바람이 무척 시원하다.

 

 

 

 

 

 

 섬마을의 시골 길을 마냥 걸어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이 펼쳐보이지만 조망이 별로라서 아쉬움이 남는다

 

 

 

 

 

 

 

 

 섬마을의 유일한 농사 수단인 재래식 농기구도 눈에 보인다

 

 

 

 

 

 함구미마을의 풍경

 

 

 

 

 

 

섬마을의 아름다운 산하의 풍경이다

 

 

 

 

 

 

 초분의 모습

 

 

 

 

 

 

 1코스인 두포마을로 향한다

 

 

 

 

 

  신선대에서 약 30분 걸으면 1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두포마을에 닿는다

 

 

 

 

 

 영원한 나의 산꾼의 친구와 동행을 한다

 

 

 

 

 

 신선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이다

 

 

 

 

 

 



[두포마을의 유래]

금오도가 봉산(封山)이었을 당시 사슴 수렵차 내려오는 관포수들이 처음 도착한 포구라 하여 '첫개'(初浦)라 부르다 두포(斗浦)로 바뀌었다 한다. 관의 도포수(都砲手)였던 박치안(朴致安)1885년 처음 입주했고 같은 해 금오도 조정에서 권농관이 파견되어 지금의두모리 1367번지에 관사를 짓고 살았고 18896월 최순익(崔順益)이 초대 금오도 둔장(屯長)으로 임명받아 두포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두포는 금오도 개척의 중심지였다 한다.

 

 

 

 

 

 

 섬마을의 돌담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두포마을의 길

 

 

 

 

 

 

 두포마을에는 노송이 아름답게 자라고 있다

 

 

 

 

 

 

1코스를 마치고 2코스 구간으로 향한다

 

 

 

 

 

 

 

 

 

굴동전망대로 가는 길

 

 

 

 

 

 

 굴동전망대에서 한컷

 

 

 

 

 

 

굴동전망대에서 바라 본 아름다운 풍경이다

 

 

 

 

 

 

 굴동전망대

 

 

 

 

 

 

 

 섬마을의 시골집이다

 

 

 

 

 

 

 

 

 촛대바위에서 한컷

 

 

 

 

 

 

 

 

[직포마을의 유래]

마을 동쪽 옥녀봉 살던 선녀인 옥녀(玉女)가 인근 모하(母賀), 두포(斗浦)마을에서 목화와 누에고치를 가져와 이곳에서 베를 짰다는 전설이 있다. 그로 인해 베틀에서 날실의 틈을 고르게 해주는 도구인 보디(보대)에서 이름을 따 '보대'라 불렀고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직포(織浦)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한다. 지금도 주민들은 '보대'라 부르고 있다. 1835년 화정면 개도에서 살던 천안김씨(天安全氏) 김인준과 밀양박씨(密陽朴氏) 박운구가 몰래 숨어 들어와 처음 정착했다 한다. 현재 마을의 노송 30여 그루는 그들이 정착 당시 방풍림으로 심었던 것이라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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