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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충청도

아산시 현충사의 전시관

 

 

 

 

 

 

 

불씨를 손으로 점화 발사하는 유통식(有筒式)
화포로써 그 특징은 포가(砲架)가 상비된 것이다.

포구와 제2죽절사이에 포가를 고정 설치하여
항시 거포한 형태로 있어 그 모양이 마치 호랑이가 앉은 자세와 같다해서 호준포라 명명되었다.

장전 과정은 포구에서 화약과 토격(土隔), 그리고 탄환 순으로 하는데 화포식언해도( 火砲式諺解圖) 에 의하면 중약선 반조(半條), 화약 6냥, 토격 2촌(寸), 연환(鉛丸) 70개 혹은 철환 30개이며 발사할 때 대연자 1개(무게 5냥)를 중앙에 얹어 발사하게 되어있다.

이 포는 주철로써 전장(全長) 40cm,구경(口徑) 4cm, 외경(外徑)14cm이다.

 

 

 

 

 

 

 

 

 

 

 

 

 

 

 

 

 장검(長劍) - 보물 326호 1959.8.24 지정

이 칼은 선조 27년(1594) 4월에 한산도 진중에서 당시 칼을 만드는 대표적인 장인으로 이름난 태귀연과 이무생이 만든
것으로 충무공께서 항상 벽에 걸어두고 보면서 정신을 가다듬으시던 칼이다.

칼 위에는 각각 장군의 친필 검명(劍銘)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
『석자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
197.5cm, 5.3kg

 

 

 

크기: 세로 193cm, 가로 113cm

공의 영정에 대하여 기록상으로 보아서는 일찍이 통영의 초묘안에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그 뒷소식은 전혀 알길이 없고 그 후 순천과 여수 충민사에 화상을 모신 일이 있었으나 역시 그 내력은 알 길이 없다.

1932년 일제 강점기에 현충사 재건을 위한 거족적인 운동이 일어났을 때
성금 16,021원30전으로 사당 및 영정을 모시고 남은 돈 386원 65전은
현충사 기금으로 하여 동년 6월 5일 송진우(宋鎭禹), 백관수(白寬洙),
유억겸(兪億兼) 등이 참석하여 영정 봉안식을 가졌다.

그때, 청전 이상범 화백(靑田 李象範 畵伯)이 영정을 그려서 현충사에 모셨으나, 고증이 부족하였으므로 1949년 다시 충무공기념사업회 편집위원
(위원장 이은상)들이 이당 김은호 화백(以堂 金殷鎬 畵伯)으로 하여금 두폭의충무공 영정을 그리게 하였는데 조복화상은 현충사에 모셨다가 순천 충무사로 옮겼으며(불의의 화재로 영정도 소실 되었다) 갑주입상은 한산도
영정각에 모셨다.
현재 현충사의 영정은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타난 고증에 입각하여 1953년에 월전 장우성 화백(月田 張遇聖 畵伯)이 그린 것으로 1973년 10월 30일 표준영정으로 지정되었다.

공의 영정을 그리기 위하여 많은 학자들의 고증이 있었던 것 중, 공의 용모에 대한 대표적 기록이 있는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을 참고하였다.
영정을 봉안한 곳으로는 현충사에 봉안되어 있는 영정을 비롯하여 순천
충무사(1953년 이당 김은호 화백 작)에 모신 조복 좌상과 한산도 충무영당(1950년 이당 김은호 화백 작)에 모신 갑주입상 등을 볼 수 있다.

 


 

 

 

 

 

 

 

 

거북선은 약400년전 이충무공께서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을 예견하여 건조한 당대 무비(無比)의 전선(戰船)이다.
거북선의 크기는 그 당시의 전선과 거의 같으나 효율적인
전투력을 고려하여 건조된 점이 특수하다.
선체는 두치에서 한자에 이르는 두께의 목재를 사용하여
매우 튼튼하게 하였고, 선체 위에는 판자와 철갑을 덮고
쇠못을 꽂아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하였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건조되었다. 최대 130명 내지 150명까지 승선할 수 있었던
거북선은 내부가 2층으로 되어 있어 아래에선 노를 젓고
짐을 실었으며, 위에서는 총포를 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좌우 16개의 노와 지붕에 두개의 돛이 있어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으며, 교란, 돌파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앞뒤 2개의 출입문과 지붕에 4개의 비상문이 있으며 앞의 용머리에서는 연막을 터뜨려 적을 혼란시켰다.
임진일기에 보면 거북선이 여수 앞바다에 진수한 것은 1592년 3월 27일이며 거북선에 지자포, 현자포 등을 장치하여 실전에
배치된 것은 왜적이 침입하기 전날인 4월 12일이었다. 거북선은 기록상으로 충무공의 2차출동(사천, 당포, 당항포해전)시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되어 왜적을 무찌르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 거북선 모형은 충무공의 애국애족 정신을 되살리고 그 뜻을 길이 계승하고자 이충무공전서의 1795년 기록을 토대로 하여
실물크기의 1/6로 축소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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