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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경남 합천군} 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 해인사에 다녀오다.

 

 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 해인사에 다녀오다.

 

 

불기 2569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서울에서 내려온 딸래미 가족과 함께

경남 합천군 가야면에 위치한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합천 해인사 봉축 법요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이른 아침에 대구를 출발하여 갔지만 역시나 차량이 너무나 많이 밀려서 예상 시간보다는 늦게 도착하여 법요식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법당에 들러서 가족의 건강과 가정에 행운이  함께 하기를소망하면서 부처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올리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였다.

 

합천 해인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애장왕 3(802)에 순응,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하였으며,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어 법보종찰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해인사는 법보종찰이요, 화엄십찰의 하나이다.

 

 

 

사진촬영정보 
▶바디 : 캐논 EOS R5 풀프레임 미러리스, ▶렌즈 : 캐논 정품 RF 24-105mm F2,8 L IS USM Z 최신형 렌즈

 

가야산 해인사로 통과하는 문이다

평상시에는 주차요금을 받는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모든 것이 면제다.

 

 

딸래미 가족의 인증 샷 한 컷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많은 불자 분들이 걸어서 오르고 있다.

 

 

해인사 종합 관광 안내소다.

 

 

해인사 조감도와 전각 배치도의 설명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외손들과 함께 해인사를 찾아서

소 생태계 수서생물 관찰대에서 잠시 들렀다가 생물을 관찰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무데크로를 따라서 일주문으로 오르는 모습이다.

 

 

일주문에서 한 컷

 

일주문은 큰 절에 들어설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이 일주문이다.

절의 어귀에 서있는 제일문으로서 절의 위용을 한눈에 느끼게 해 주는 일주문은, 곧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하니 초발심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일주문은 기둥이 양쪽에 하나씩 세워져 문을 지탱하고 있는 건축구조에서 그 이름이 비롯되었다. 

 

해인사의 일주문은 홍하문이라고도 하며, 그 소박한 아름다움과 주위 경치와의 어우러짐이 일품인 까닭에 일주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름이 나 있다.   신라시대에 절을 처음 세울 때부터 일주문은 지금의 자리에 있었겠지만, 조선시대 세조3년 봄에 중수하여 그 뒤로 지금까지 다섯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는 기록만이 전해 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건축 양식은 조선시대 초기의 양식인 듯하다. 마지막 중건은 1940년에 있었다.  일주문 정면에 있는 현판의 글씨 "가야산 해인사"는 근대 서가의 대가인 해강 김규진의 글씨로서 산문의 격을 한층 더 높여 준다

 

 

 

일주문에서 딸래미 가졷도 한 컷

 

 

아래 고사목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고사목의 모습이다.

이 느티나무는 약 1.200년 동안에 해인사와 같이 성장해오다가 1943년에 수령을 다해 고사하고 

지금은 이렇게 등치만 남아 있기도 하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봉황문으로 가는 길이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봉황문으로 들어선다.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수문장처럼 버티어 서 있는 천년 노목의 가로수를 따라 그 정취에 취해 걷다 보면 두번째 문인 봉황문이 나타난다. 이 봉황문은 천왕문이라고도 불린다. 큰 절은 으레 천왕문이나 사천왕문 또는 금강문 따위로도 불리는 문을 갖고 있기 마련인데, 이 안에는 돌이나 나무 등으로 조각되거나 탱화에 그려진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봉황문의 사천왕은 본디 욕계 육천 가운데 사왕천에 머물면서 천상으로 들어오는 여러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선신으로 수미산의 동서남북에 위치하여 악한 것을 멸하고 불법을 옹호하려는 서원을 세웠으므로, 산문 입구에 봉안하여

수문역과 도량 수호역을 맡게 하였다. 이러한 신중들은 대부분 힌두교의 영향이며, 불교가 대중화하는 가운데 인도의

민간 신앙과 함께 접합될 때 생긴 사상이다

 

 

 

 

봉황문을 들어서면

이처럼 소원나무가 보인다.

소원나무에는 이처럼 많은 관광객들이 한가지의 소원을 적어서 소원나무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봉황문을 들어서면

국사단이 자리하고 있다.

 

 

사천왕상 기와불상 접수처다.

 

 

해탈문이다.

 

 

해탈문 앞에는 아름다운 꽃이 곱게 피었다.

 

 

 

구광루의 전경이다.

구광루는? 해인사의 모든 건물 가운데에서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구광루라는 이름은 화엄경의 내용에서 따온 것인데, 화엄경에는 부처님께서 아홉 곳에서 설법하시면서 그 때마다 설법하시기 전에 백호에서 광명을 놓으셨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는 노전스님을 비롯한 큰스님들만이 법당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누각은 법당에 들어갈 수 없는 일반 대중들이 모여 예불하고 설법을 듣는 곳으로서 지은 것이다.

 

 

 

 

 

구광루 내부의 모습이다.

 

 

 

 

구광루 앞에는

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많은 불자님들의 발걸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모습이다.

 

 

 

 

기념품 판매점과 찻집이 있다.

 

해인범종의 전경이다.

종각에는 사물이라고 불리는 법기가 설치되어 있다.

사물은 범종 · 법고 · 목어 · 운판을 말하는데 이 범종각은 사찰의 경내에서 마당을 내려다 보았을 때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어

왼쪽을 체로 오른쪽을 용으로 말하는 화엄의 사상에 따라 설치 된 것이다

 

 

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해인사 스님들이 범종에서 종을 치고 이동하는 모습이다.

 

 

 

해인사의 일부 전경이다.

 

 

대적광전의 전각이다.

한사원의 큰 법당에는 부처상이나 보살상이 모셔져 있는데 큰 법당의 이름은 그 안에 모신 주불에 따라 결정된다. 

그 주불이 바로 그 사원의 정신적인 지주임은 말할 것도 없다. 해인사는 화엄경을 중심 사상으로 하여 창건되었으므로, 

거의 모든 절이 흔히 모시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대신에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법당의 이름도 대웅전이 아니라 대적광전이다.

 

 

대적광전 내부의 모습이다.

지금의 건물은 창건주인 순응스님과 이정스님이 802년에 지은 건물 자리에다 1818년에 다시 지은 것이며,

법당 안에는 일곱 불상이 모셔져 있다. 법당에 들어서 보면, 왼쪽부터 철조관음보살, 목조 문수보살, 목조 비로자나불이 있고,

그리고 맨 가운데에 본존 비로자나불이 있고 다시 그 옆으로 목조 지장보살, 목조 보현보살, 철조 법기보살이 차례로 안치되어

있다.    본존 비로자나불은 1769년에 조성되었는데, 그 왼편에 있는 또 하나의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가운데의 본존불을 모시기

전까지의 본존불이다. 이 목조 비로자나불상은 그 좌우의 보현보살상, 문수보살상과 더불어 삼존불로서, 고려시대에 가지가

셋인 큰 은행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삼존불은 처음에는 경상북도에 있는 금당사에 모셨다가, 지금은 터만 남아 있는

가야산의 용기사를 거쳐,1897년 해인사 대적광전에 모시게 되었다. 그밖의 불상들은 조성 연대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우리 가족들은 대적광전에서

부처님 불상을 바라보면서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다.

 

 

불자님들은 대적광전 앞에서 욕불행사를 하는 모습이다.

 

 

정중삼층석탑의 전경이다.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 아래 넓은 뜰에 자리잡고 있어 정중탑(庭中塔)이라 한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54호로 지정되었다. 전체적으로 신라 석탑의 기본 형식이 나타나 있고 조각 수법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높이 6m로 큰 탑에 속하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3층기단(基壇) 위에 3층 탑신(塔身)이 있고 정상에 상륜부(相輪部)가 있는데, 원래는 2층 기단이었으나 1926년 중수할 때 1층이 더해졌다. 기단부는 상층 기단 양쪽에 우주(隅柱)와 장주를 하나씩 모각했으며, 탑신에는 우주 이외의 별다른 조각이 없다.

 

옥개받침은 모두 5단으로 되어 있고, 옥개석의 전각에는 후대에 설치한 풍경(風磬)이 달려 있다. 처마 끝의 반전은 심하지 않으며 탑의 상륜부에는 노반, 앙화, 구륜(九輪),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1926년 6월 중수할 때 상층 기단의 석함(石函) 속에서 9개의 작은 불상이 발견되었는데, 중수가 끝난 뒤 다시 석탑 안에 봉안했다. 석탑 앞에 놓여 있던 안상과 연화무늬가 새겨진 직사각형의 봉로석(奉爐石)은 석등(경남유형문화재 255) 앞으로 옮겨놓았다. 

 

 

 

 

 

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해인사 경내에는 오색찬란한 연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해인사 만불보전의 전경이다.

 

 

만불보전 내부의 모습이다.

 

 

보경당의 전경이다.

이 건물은 근래에 불교회관으로 지어졌다. 

여러 큰 불사에 집회장과 법당으로 쓰이도록 설계되었는데, 해인사의 다른 건물들에 견주어 지나치게 크게 지어진 감이 없지 않으나, 지하층도 크게 내어 여러모로 쓸모있게 지어진 집이므로 불사 때에 유용하게 사용된다.

 

 

보경당 앞에는

어린이 날과 부처님 오신 날이 함께 겹치면서 어린이들에게 연꽃을 만드는 체험 행사도 함께 진행되었다.

 

 

황금색의 연등이 고급스럽고 특이하다.

 

 

대비로전의 전경이다.

 

 

독성각의 전경이다.

 

 

학사대의 모습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해인사에서는 점심 공양을 하려고 이렇게 긴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다. ㅎㅎ

 

 

해인사 점심 공양을 하는 모습이다.

 

 

점심 공양은 비빔밥으로 맛나게 먹었다.

 

 

 

▶  동영상 보기 클릭 https://m.blog.naver.com/sgh0552/clip/9429592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여 가족과 함케 해인사에 들렀다, 합천 해인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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