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
대구 삼성여행사 1박 2일간 식도락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낙산사에 들렀다가
동해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수관세음보살상에서 기도를 올리고 전망대에 올라서 보면 저 멀리 바다의 아름다운 풍경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그리고 낙산사는 지난 2005년 4월 대형 산불로 인해 많은 당우가 소실되고,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낙산사를 아끼고 사랑해주신 국민들과 불자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이제 새롭게 천 년 고찰 불사를 향해 새롭게 보수가 되었다.
낙산사는
금강산, 설악산과 함께 관동 3대 명산의 하나로 손꼽히는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낙산사는 관음보살이 항상 머무는 곳을 이르는 보타 낙가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역대로 지위와 신분을 떠나 관음 진신을 친견하려는 참배객들의 간절한 발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고 한다. 특히 낙산사는 동해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혜의 풍광과 부처님 진신사리가 출현한 공중 사리탑, 보물로 지정된 건칠 관음보살 좌상, 동양 최대의 해수관음상, 천수관음상 칠관음상 등 모든 관음상이 봉안된 보타전, 창건주 의상대사의 유물이 봉안된 의상기념관 등 숱한 성보 문화재를 갖추고 있어 관음성지이자 천년고찰로서 전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촬영정보
▶바디 : 캐논 EOS R5 풀프레임 미러리스, ▶렌즈 : 캐논 정품 RF 24-105mm F2,8 L IS USM Z 렌즈
관음성지 낙산사 일주문을 통과한다.
낙산사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노송의 소나무가 아른다운 풍경이다.
낙산사 종합 안내도다.
낙산사 안내소다.
낙산사 홍예문의 전경이다.
낙산사의 문루인 홍예문은 조선 세조 12년(1466)왕이 낙산사에 행차하여 사찰을 중수하고 이 홍예문을 건립하였다고 하며 홍예는 당시 강원도의 고을 수에 맞추어 26개의 홍얘석을 써서 조성하였다고 전해온다. 홍예 위의 누각은 1962년 건립한 것으로 문루좌우의 자연적 지형을 이용하여 홍예석 주위에 자연석을 쌓고 그 위에 문루를 세운것이 아주 특이하다.
홍예문을 통과하여 낙산사 사천왕문으로 가는 길이다.
낙산사 관람에 대한 안내도다.
사천왕문의 전경이다.
사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찰을 지키면서 사부대중을 돕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천왕을 모신 문이다.
1950년 6.25전쟁과 2005년 대형 산불의 재난 속에서도 이 문과 사천왕상은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2005년 4월 6일에 일어난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
낙산사의 사천왕문. 2005년 화재의 피해를 입지 않은 극소수의 건축물들 중 하나다. 다만 다들 복원하는데 혼자 그냥 두긴 뭐했는지 복원 과정에서 사천왕상을 개금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낙산사의 동종의 전경이다.
조선 시대인 1469년에 낙산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세조를 위해 그의 아들인 예종이 만들게 한 범종이다.
2005년 대형산불로 소실된 것을 2006년 10월에 복원하여 현재 종각에 봉안되어 있다. 이 작품은 조선 시대 범종 가운데 16세기 이전에 조성된 드문 예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범종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낙산사 동종은 과거에 보물 제 479호인 낙산사 동종이 걸려 있던 누각이 2005년 화재 때 불타면서 안에 있던 동종까지 모조리 녹아버렸다.현재는 동종을 예전 형태대로 복원해서 걸어 놨다. 복원 전후의 외양 차이가 다른 전각에 비해 상당히 큰 편이다. 당시 낙산사의 주변 산불에 어떻게 금속으로된 동종이 녹아내리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나무가 탈 때 내는 에너지는 생각보다 많다. 산불 같은 대화재의 겉불꽃(제일 뜨거운 부분)은 천수백°C. 녹는점이 천°C 근처인 구리나 청동은 충분히 녹일 수 있다고 한다.
빈일루의 전경이다
빈일루에 대한 설명의 글은 상기의 안내 글을 읽어보면 알 수가 있다.
낙산사 종무소의 전경이다.
원통보전으로 들어가는 대성문의 전경이다.
칠층석탑(보물 제499호)의 전경이다.
원통보전 앞에 세워진 조선 시대 석탑으로 현재 보물 제49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낙산사는 조선 세조 때 중창되었는데 이 탑도 그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탑은 비록 부분적으로 파손된 곳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탑의 상륜 부분까지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 시대 불탑 연구에 훌륭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이 칠층석탑은 다만 정중앙이 아닌 약간 어긋난 위치에 있다.
석탑의 재질은 화강석이며 청동제 상륜을 달았다. 원래는 3층이었지만 1467년(조선 세조 13)에 탑을 중수하면서 7층으로 층수를 늘렸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한쪽 귀퉁이가 뭉텅 잘려나가는 손상을 입었다.
다른 석탑들에 비해 독특한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낙산사 원통보전(대웅전)의 전경이다.
원통보전은 낙산사의 중심법당으로서 낙산사가 관음성지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원통보전은 원통전 혹은 관음전이라고 불리며, 관세음보살님을 주불로 봉안하고 있다.
다른 사찰들은 대웅전 위치에 있는 건물. 석가모니불 대신 관세음보살을 모신다.
낙산사는 2005년 화재로 모조리 불탔지만 안에 있던 관음불상은 미리 옮겨놨기에 화를 면했다고 한다.
이후 복원하면서 예전엔 청기와 건물이었던 것을 일반적인 기와를 올린 건물로 바꿨다고 한다
원통보전을 관람하고 해수관음상으로 가기 위하여 이곳의 원통문을 통과한다.
일명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다.
이 길을 걸어보면 당신의 꿈이 이루어진다고 하기도 한다. ㅎㅎ
해수관음상으로 가면서 담아본 보타락의 누각이다.
원통문을 통과하여 해수관음상으로 가는 길이다.
해수관음상 안내소다.
양초나 필요한 기도 물품을 이곳에서 구입한다.
해수관세음보살상이 우뚝하게 서있다.
해수관음상의 전경이다.
낙산사 성보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사진으로 보이는 것처럼 해수관음상이다.
그래서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해에 왔다가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코스가 되어 있을 정도로 널리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해수관음상은 낙산사의 끝자락에 위치한 거대한 관음불상으로
1977년까지만 해도 동양 최대의 불상이었다. 해수관음상은 1977년 11월 6일 점안되었으며, 높이16m, 둘레3.3m 최대 너비6m로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 옆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대좌위에 활짝핀 연꽃위에 서 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을 받쳐들고 있으며, 오른손은 수인을 짓고 있다.
나의 아내는 해수관음상에서 양초를 켜고
가족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보기도 한다. ㅎㅎ
바다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다.
해수관음상 앞에는 이렇게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 서면 동해의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동해 바다의 풍경이다.
전망대에서 담아본 낙산해수욕장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보타락의 누각이다.
낙산사 보타전의 전경이다
원통보전, 해수관음상과 더불어 낙산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불전이다.
불전 내부에는 7관음, 32응신, 1500관음상을 봉안하고 있다.
이 보타전은 원통보전에서 해수관음상 쪽으로 가다 보면 아래쪽에 보이는 눈에 띄게 거대한 건물이다.
원래 있던 건물은 아니고 근래에 지어진 것이다. 낙산사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음성지임을 상징하는 건물로, 건물 안에는 1500기의 관음상을 봉안하였다. 앞쪽에는 낙산사 7층 석탑을 본따 새로 지은 탑이 있기도 하다.
지장전의 전경이다.
ㅎㅎ 동전이 이렇게나 많이 보이는구나
의상대의 전경이다.(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
의상대는 의상스님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낙산사를 지을 때 이곳에 이르러 산세를 살핀 곳이며 의상스님의 좌선 수행처라고 전한다. 홍련암으로 가는 길 해안 언덕위에 있는데, 주위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히면서 시인 묵객이 즐겨 찾는 곳이었으며, 지금도 낙산사를 찾으면 반드시 둘러 보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우리나라 최고의 일출명소로 손꼽히는 낙산사 의상대는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곳이다.
의상대는 낙산사의 바닷가 절벽 위에 세워져 있어 일출경관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새해 첫날이면 동쪽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이곳에서 신년기도를 드리기 위해 온 신도들과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홍련암으로 가는 길이다.
홍련암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동종이다.
홍련암의 전경이다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
홍련암은 상당히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암자다.
의상대에서 옆으로 빠져서 조금만 내려가면 도착할 수 있다. 옛날에 의상대사가 참배를 할 때 갑자기 푸른 새가 나타나자 기이하게 여겨 따라가다가 어떤 석굴 속에서 자취를 감추자 그 앞에서 7일 밤낮을 기도하였고, 그러자 앞바다에 연꽃이 나타나 관세음보살이 현신하였다고 한다. 이후 그곳에 터를 닦고 암자를 세워 이름을 홍련암이라 지었다고 한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 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장소이며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의 수도인 경주에서부터 멀리 이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파랑새를 만났는데, 파랑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다. 그리고 7일 후 바다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친견한 후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 이름을 짓고, 파랑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이라 불렀다고 한다.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은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로 과거부터 수많은 시인묵객들에 의해 수려한 풍광으로 사랑받아온 명승지이다. 671년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바닷가 동굴 관음굴로 들어가 기도하던 중 붉은 연꽃 속에 나타난 관음보살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관음굴 위에 홍련암을 만들었고 천년고찰인 낙산사의 모태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좌선을 수행하던 해안절벽위에 세워진 또 다른 명승지 의상대와 함께 국가지정 명승지 제27호로 지정되어 보호 및 관리 되고 있다
보타전과 보타락의 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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