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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대구,경상북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투 // 구국의 현장 다부동전적기념관

다부동전투 //

구국의 현장  다부동전적기념관

 

다부동전적기념관은 북한의 6·25 기습남침으로 3일만에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처했을 때, 불퇴전(不退轉)의 투혼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구국(救國)의 현장”으로서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의 참극을 겪지 않도록 실천적 결의를 다지는 곳이다. 이를 위해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는 구국의 정신과 평화의 소중함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국민과 함께하는 기념관」,「역사가 흐르는 기념관」,「가슴으로 느끼는 기념관」으로서 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유일한 구국의 현장이다.

 

▶주소 : 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

 

▶관람시간
하계(3월~10월) : 09:00 ~ 18:00
동계(11월~2월) : 09:00 ~ 17:30
정기휴관일 : 설/추석 명절

▶관람문의/신청
TEL : 054) 973 - 6313
           054) 979 - 6625
FAX : 054) 972 - 5625

 

 

사진촬영정보

바디 : 캐논 EOS R5 풀프레임 미러리스, 렌즈 : 캐논 정품 24-70mm F2.8 L IS USM

 

 

주차장의 전경이다.

주차장으로 오는 주소는 : 경북 칠곡군 가산면 호국로 1486

 

 

다부동전적기념관의 안내도다.

 

 

 

다부동전적기념관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칠곡군 관광안내도다.

 

 

 

다부동전적기념관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부동전적기념관으로 관람하는 입구에는 6.25 전쟁 그 당시에 참가한 나라들의 국기가 걸려있다.

 

 

 

관리동이다.

 

 

 

기념관 우측에는 나이키 유도탄이 우뚝하게 서있다.

1957년도 미국 Western Electric사에서 제작된 유도탄으로 우리 국군에는 1960년에 도입되었으며, 

적 비행물체 파괴 및 중요목표물에 대한 지대지 임무를 수행하는 미사일이다

 

 

 

야외전시장이다.

 

 

 

야외전시장에는

8인치 자주포와 전차가 전시되어 있다.

 

 

 

전차와 장갑차가 전시되어 있다.

 

 

 

장갑차가 전시되어 있다.

 

 

 

백선엽 장군의 동상 주변의 풍경이다.

 

 

 

백선영 장군의 동상이다

 

건립취지문
6·25전쟁의 위기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백선엽 장군의 나라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다부동전적기념관을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성지로 조성, 호국보훈 명품 관광지로 발전시키고자 국비와 지방(경북도)비를 포함한 국민들의 성금으로 2023년 7월 5일 제막식을 개최하였다.

규모 및 특징- 
규 모 : 약 661㎡(200평), 4.2m×1.56m(브론즈, 화강석)
- 특 징 :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동서남북 사방에서 지켰다는 의미를 담아 360도 회전하도록 설계하였다.

 

 

 

 

구국용사 충혼비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구국용사 충혼비다.

 

건립취지문

이곳은 6·25 전쟁 최대의 격전지로서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국군을 비롯한 유엔군, 경찰, 학도병, 지역주민 등 모두가 구국의 일념으로 함께 싸워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곳이다. 이에 6·25전쟁 45주년을 맞이하는 1995년 6월 24일, 당시 조국을 구하려고 싸우다 산화하신 수많은 구국용사들의 유골을 수습하여 여기 양지바른 곳에 봉인하고, 님들의 넋을 기리고자 구국용사충혼비를 세웠다.

 

옛 전우의 넋을 기리며

이곳은 6·25 자유수호전쟁 당시 최후의 보루인 다부동전투의 전승을 기념하여 서기 1981년에 전적기념관을 건립하였으나 전쟁의 포연이 사라진지 40년이 넘도록 수많은 구국영웅들이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구천을 헤메고 있어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주관으로 육군 제50사단의 지원하에 1994년부터 3년간에 걸쳐서 당시의 격전지를 수색하여 구국용사 유골 259점을 양지바른 곳에 안장하고 1995년 5월 30일 경상북도와 칠곡군의 지원을 받아 구국용사충혼비 및 구국관을 세워 조국에 몸 바친 옛 전우의 넋을 기리며 호국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가꾸었으니 구국의 영령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서기 1997년 6월 24일 다부동전투구국용사회 추진위원회 고문 : 백선엽, 최영희, 김동빈, 박기병, 김점곤 위원장 : 김명중 위원 : 홍정표, 김종표, 황대형, 이기형, 김형필, 김성근, 안봉근, 김복출, 조판수, 박상근, 황권주, 곽병환, 김필섭

건립 : 1997년 6월 24일

 

 

 

 

구국경찰 충혼비다.

 

경찰은 건국 · 구국 · 호국 · 민주경찰로서 역사의 구비마다 혼신의 힘을 기울여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임무수행에 최선을 다해왔다. 특히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그 해 8월, 북한군은 대구 점령을 목표로 낙동강전선에 전투력을 증강하여 총공격을 시작하면서 대구 중심가에 포탄이 떨어지고, 영천이 무너지는 등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지자 정부를 비롯한 국방부는물론, 미8군사령부까지 부산으로 이동하고 마지막으로 경찰도 철수하라는 요청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총수였던 조병옥 내무부장관은 "대구를 적에게 내주는 것은 나라를 내주는 것과 같다", "우리 경찰만이라도 대구방어에 반드시 대구를 사수하여야 한다"는 필사의 굳은 결의로 공포에 사로잡힌 70만 대구시민을 보호하고 군과 더불어 구국불퇴의 결사항전으로 대구방어에 큰 몫을 다함으로써 맥아더장군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적 발판을 만들어 전쟁 국면을 반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여 구국경찰의 역할을 휼륭이 수행하였다.

이와 같이 경찰은 대구를 지키기 위한 낙동강 방어 전투에서 15,000여 명이 참전하여 전시기록에 있는 197명의 구국경찰이 나라를 위해 장렬하게 산화하였는 바, 이는 경찰의 대구사수 정신이 되어 전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하지만, 반세기가 훌쩍 넘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안식처조차 마련하지 못하여 매우 안타깝게 여기어 오던 중 경북지방경찰청을 방문한 이무영경찰청장께서 전용찬 경북청장이 건의한 구국경찰충혼비 건립계획을 보고 받고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서 구국경찰의 성지인 이곳 다부동 6·25 견적지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구국경찰충혼비로 이름한 비를 건립하여 조국을 위해 몸바치신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참전경찰관들의 이름을 새겨 작은 소망이나마 이루도록 하였으며, 구국정신을 일깨워줄 수 있는 산교육의 터전과 참배 장소로 활용하기 위하여 전 경찰의 뜻을 모아 구국경찰충혼비를 세우게 되었다.

 

 

 

 

상기의 미사일은

미국 RAYTHEON사에서 1953년 제작된 저고도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로 1964년 우리 군에 도입되어 방공포병에서 운용중인 미사일이다.

 

 

 

야외전시장에는 은행나무가 곱게 물들었다.

 

 

 

이 전투기는 

NORTH AMERICAN사에서 제작되었으며 6·25전쟁 당시 MIG-15 격추기로 명성을 얻었던 전투기이다

 

 

 

상기의 기초훈련기는

T-37C TWEET는 미국 CESSNA사가 개발한 쌍발엔진의 기초훈련기로서 제트기의 조종과 계기형태 및 야간 비행술을 교육시키도록 고안된 최초의 제트 훈련기이다. 원 모델인 T-37C는 1955년 첫 비행하였고, 1957년(T-37A)과 1959년 (T-37B)에 실전배치 되었으며 총 1,300여 대가 제작되었다. 한국공군은 1973년에 무장능력이 추가된 T-37C TWEET 20여 대를 도입한 이래 총 60여 대를 도입하여 전투조종사 양성을 위한 훈련용으로 이용하였다. 이곳에 전시된 80930은 1966년 브라질에서 생산된 기체로서 1983년에 도입하여 20년간 10,500시간을 비행하여 전투조종사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으며 국산 훈련기인 KT-1(웅비) 항공기에 그 임무를 인계하고 2002년 6월 30일 퇴역하였다.

 

 

 

야외전시장에서 바라보는 앞의 산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자유세계를 구한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이다.

 

건립취지문
6·25전쟁 발발한 직후에는 미군의 즉각적인 개입을 통해 한반도 공산화를 저지하고 이후 미국과 치열한 외교전을 벌여 1953년 10월 1일 한미상호방호조약 체결을 이끌낸 이승만 대통령과 6·25전쟁이 발발 소식을 듣고 단 10초 만에 미군 참전을 결정하여 북한과 중공군의 침공을 막아낸 트루먼 대통령을 자유세계를 구한 결전장인 다부동에 세워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한미동맹 정신으로 평화통일을 이루겠다는 다짐으로 정전 70주년을 맞아 2023년 7월 27일 제막식을 개최하였다.

규모 및 특징-
 규 모 : 약 80㎡(25평), 4.2m×1.56m(브론즈, 화강석)

 

 

 

야외전시장이다.

 

 

소련에서 개발한 견인포로서 6·25전쟁 당시 북한군이 사용했던 

곡사포로서 한국군의 155㎜ 야포와 대등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6·25전쟁 이전부터 우리 국군의 유일한 포병화기였으며,

북한이 전차를 앞세우고 남침했을 때, 우리 국군은 이 포로 적에게 대항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1962년 4월 미국에서 생산되어

 1983년 5월 한국군에 도입되었으며, 2006년 2월 현역에서 퇴역한 대공포이다

 

 

 

37mm 직사포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화기로서 적의 진지 및 차량, 장갑차, 병력 등이 집결되어 있는 지역을 사격하여 치명타를 입혔던 아군의 주력화기로 유명했던 야포였다

 

45mm 직사포

6·25전쟁 당시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이 포를 대량으로 공급받아 남침시 사용하였는데, 1951년초 경기도 용문산 전투에서 우리 국군 제6사단이 북한군을 물리치고 노획하였다

 

 

 

6.25전쟁 그 당시에 다부동 전투가 치열했던 고지의 설명이다.

 

 

 

다부동 전적 실내기념관이다.

 

 

 

전적기념관의 안내도다.

 

 

 

 

구국의 현장 다부동 55일간 치열한 혈전이었다.

 

 

 

 

 

아래는

실내전시관에 6.25전쟁 당시에 일어난 내용의 설명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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