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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전북 익산시} 백제문화 최대의 가람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 미륵사지 //국보11호, //보물236호 //익산시티투어

백제문화  최대의 가람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 미륵사지


업무상으로 익산시에 위치한 삼기농협에 출장을 갔다가 백제문화가 살아 숨 쉬는

최대의 가람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익산 미륵사지를 둘러보기 위하여 미륵사지로 가본다. 역시 말로만 듣던 익산 미륵사지는 평상시에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서 손꼽아보았는데 출장을 가는 길에 바로 눈앞에 미륵사지를 지나가는 길에 잠시 한 바퀴를 둘러보았지만 현재 국보 11호로 지정된 미륵사지 석탑은 그동안에 장시간 보수공사를 통하여 깔끔하게 단장되어 그 위용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미륵사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광활한 대지 위에 좌측에는 미륵사 석탑이 우측으로는 미륵사 동 석탑이 마주보며 우뚝하게 서있기도 하다.


미륵사는 백제 제30대 무왕이 세운 사찰로, 익산의 주산인 미륵산(과거에는 용화산이라 함)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師子寺를 가던 중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자 사찰을 짓고 싶다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운 후, 법당과 탑, 회랑 등 을 각각 세 곳에 ´미륵사´라 하였다."는 미륵사 창건설화가 전한다. 또한 미륵사지의 발굴은 1980년에서부터 1995년까지 15년간 실시되어 20,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막새기와류와 기와의 등에 문자를 새긴 명문와, 토기류 그리고 자기류가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건물의 서까래 끝에 붙이는 녹유 연꽃무늬서까래 기와는 백제시대에 사용된 것으로 상당수가 출토되었다. 그리고, 이밖에 그 수는 많지 않지만 금속제품, 목제품, 벽화편, 토제편, 유리 및 옥제품, 석제품 등도 수습되어 종류 면에서 비교적 다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촬영정보

갤럭시 노트9으로 촬영(1.200만화소)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전경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국보 11호이기도 하다

 전북 익산시는 미륵사지 석탑 보수공사 준공을 계기로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백제역사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관광 인프라와 콘텐츠 완공된 석탑은 규모 면에 있어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높이 14.5m, 너비 12.5m 6층 구조다. 사용된 부재는 총 1,627개로 무게는 1830t에 이른다고 한다.





익산미륵사지의 입구 전경이다.

익산미륵사는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 위한 호국 사찰로써 성격을 띠고 세워졌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미륵사는 백제가 망할 때 까지 왕실 사찰로 혹은 호국 사찰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찰이었다고 한다. 






익산 미륵사지 정문을 통과하면 엄청난 규모의 미륵사지가 한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곳 미륵사는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미륵사지 입구에 이동식 관광안내소를 설치하고 문화관광해설사를 배치해 방문객을 맞는다.

시티투어로 익산여행을 한 번 즐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익산 미륵사지의 주차장이다.

주차장으로 오는 네비양의 주소는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자가용으로 이용하여 미륵사 주창으로  오는 길 안내

경부고속도로 한남IC - 천안논산고속도로 천안분기점 - 호남고속도로 여산휴게소(순천방향) - 익산IC 익산 방면으로 우측방향(799지방도) - 금마사거리 금마|삼기농공단지 방면으로 우회전(금마길) - 좌측방향(금마3) - 좌회전(고도길) - 우회전(미륵산길)

 

지역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미륵사 주차장으로 오는 길 안내

기차

용산역 - 익산역

ktx : 1시간10

새마을호 : 2시간50

무궁화호 : 3시간20

 

시외/고속버스

동서울터미널-익산시외버스터미널

남부터미널-익산시외버스터미널

센트럴시티-익산고속버스터미널

 

지역내 대중교통

41, 41-1, 60, 60-1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미륵사지의 조감도다.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미륵사지의 입구에서 인증샷으로 한 컷을 담아보기도 한다.





미륵사지 관람 안내도다.

관람안내도의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한 바퀴 둘러보면 된다.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전경이다.





미륵사지의 경내에는 푸른 잔디밭과 어우러진 연못이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다.





이곳의 미륵사지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륵사지는 백제 최대의 사찰로 30대 무왕(600~641년)에 의해 창건되었고, 17세기경에 폐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지가 발굴되기 이전에는 백제 창건당시에 세워진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 1기, 그리고 석탑의 북쪽과 동북쪽 건물들의 주춧돌과 통일신라시대에 사찰의 정면 양쪽에 세워진 당간지주 1쌍(보물 236호)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남회랑지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아래 미륵사지 당간지주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미륵사지 당간지주의 모습이다.

당간지주란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 즉 지주를 말한다.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보물 제 236호로, 높이 395cm이며 통일신라시대 중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사지 석탑 남쪽에 2개의 지주가 동서로 약 90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장시간의 보수공사를 하여 가림막을 벗고 위용을 드러내었다.
높이 14.5미터, 폭 12.5미터에, 무게는 천8백 톤이 넘는다고 한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는 1999년 문화재위원회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며 해체보수를 결정한 이후 20년 만이자 2001년 10월 해체작업에 돌입 한 지 18년 만인 지난해 완료했다고 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미륵사지 석탑은 국내 단일 문화재로서는 가장 오랫동안 체계적인 연구와 국제적 기준에 따라 보수정비를 진행해 석조문화재 수리의 선도적 사례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복원 과정도 추정이 아닌, 원래 부재를 81%까지 최대 활용해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한다.






미륵사터 복원된 동석탑의 전경이다.

컴퓨터로 계산하여 복원해낸 동석탑은 기계가 사람의 정성을 대신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1993년에 복원된 동석탑이다.





아래 목탑지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목탑지의 전경이다.






아래 석등 하대석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석등 하대석의 모습이다.

미륵사터 목탑터 앞 석등받침은 부드럽고 온유한 팔각 연꽃받침은 언뜻 눈에 띄지 않는 미륵사터의 숨은 보물이다.








아래 금당지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미륵사지 금당지의 전경이다.





아래는 미륵사지 출토 석조물에 대한 설명의 글이다.






미륵사지 출토 석조물의 모습이다.





동원9층석탑 연석이다.






동원9층석탑 옥개받침석의 모습이다.





동원9층석탑 모서리 옥개받침석의 모습이다.





동원9층석탑 모서리 육개석의 모습이다.





동원9층석탑 옥개석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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