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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선운사 도솔암

도솔암의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 · 선운사 · 도솔사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진흥왕은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의 왕이었는데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 곳에 신라왕이 머물렀다는 설화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창건사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兜率)'이라는 이름 등은 도솔암은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창건된 사찰임에는 틀립이 없다.

특히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었던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연관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마애불좌상이 조송된 이래 이 불상의 가슴 중앙에는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는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현세를 구원해줄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발굴조사에 따르면 이 곳에서 출토된 기와에 '도솔산 중사(兜率山 仲寺)'라는 명문이 있어 당시에는 절이름을 중사라고도 불렀음을 알 수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오면서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 등 세 암자로 나뉘어져 독자적인 이름을 갖게 된다.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 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스님이 중창한 뒤 1694.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하였는데, 조선 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하였다.

하도솔암은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으로서 1658년에 해인(海印)스님이 창건하였으며, 북도솔암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숙종 29)에 최태신이 창건하앴다. 이처럼 각기 독자적인 암자였던 것이 근세에 와서 북도솔암을 중심으로 하나의 암자로 통합된 것이다.
현재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내원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솔암내원궁에는 보물 제280호인 지장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좌상은 보물 제1200호, 나한전과 내원궁은 각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 도솔암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후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높이는 96.9㎝이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상체가 늘씬하고 당당하여 고려 후기의 장곡사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이나 문수사금동불좌상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길상좌(吉祥坐)를 한 탄력적인 하체나 부드럽고 단아한 어깨선, 상·하체의 비례 등이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형태를 지니고 있다.
머리에는 두건을 썼는데, 이마를 감싼 후 귀 뒤로 넘겨서 어깨까지 천을 늘어뜨린 모습이다. 이러한 형태의 두건을 쓴 지장보살(被巾地藏)의 모습은 고려시대에 널리 유행하였던 도상적 특징으로, 현존하는 많은 고려불화에서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다.

얼굴은 둥글고 단아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이목구비 등을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표현하였다.
양 귀에는 만개한 화문(花紋)을 띠로 연결하여 귓볼에 묶은 이식(耳飾)을 착용하고 있어,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보살상이 원형 고리에 길게 늘어뜨려 매달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특이한 형태라 하겠다.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인(中品印)을 취하고 왼손은 가슴과 배 중간쯤에 들어 법륜(法輪)을 잡고 있는데, 이는 육도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로서 보주(寶珠)·석장(錫杖)·법륜 등의 지물을 들고 있는 지장보상의 일반적인 특성을 표현한 것이다. 앉은 자세는 오른발을 왼 무릎에 올린 모양으로 발을 실감나게 표현하였다.
어깨나 소매·무릎 등에 몇 가닥의 간단한 주름만을 표현하여, 상에 나타난 선묘는 유려하게 휘어지는 맛과 함께 단순·명쾌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보살상은 고려 후기의 불상양식을 그래로 반영하고 있는 우아하고 세련된 당대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도솔암의 서편 암벽 칠송대(七松臺)에 새겨진 높이 13m, 너비 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불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 위덕왕(재위 554~597년)이 검단선사(黔丹禪師)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마애불)을 조각하고 동불암이라는 공중누각을 짓게 하였는데, 조선 영조 때 무너졌다고 한다.
불상은 낮은 부조로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며, 머리에는 뾰쪽한 육계가 있다.
방형(方形)에 가까운 평면적인 얼굴에 눈은 가늘고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으며, 우뚝 솟은 코에 앞으로 내민 일자형의 두툼한 입술이 소박하고 익살스러운 미소를 띤 것처럼 보인다.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고, 목은 표현하지 않아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것처럼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방형에 가슴이 넓고 평면적이며, 결가부좌한 넓은 하체에 손과 발 역시 체구에 비해 큼직큼직하다.
투박한 두순은 활짝 편 채 아랫배에 가지런히 붙여져 있다.

불의(佛衣)는 통견(通肩)으로 두꺼운 편은 아니나 옷주름선이 선각으로 형식화되어 있고, 평평한 가슴 아래로 선명하고 단정한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대좌는 비교적 높은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상대(上臺)에는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고 하대(下臺)는 간략한 연꽃무의 연화좌로서 전박적으로 마멸이 심한 편이다.
광배는 표현되지 않았고, 가슴에는 사각형으로 큼직하게 복장(腹藏)구멍을 나타내었다.
머리 위에는 사각형의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고 부러진 서까래가 꽂혀 있는 것도 있는데, 이는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만 있는 누각 형태의 목조 전실(前室)을 마련하였던 흔적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사람들은 이 마애불을 미륵불이라 부르고 있는데 불상의 배꼽에 신기한 비결(秘訣)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하여, 동학농민전쟁 무렵에 동학의 주도세력들이 미륵의 출현을 내세워 민심을 모으기 위해 이 비기를 꺼내가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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