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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갤러리 ♣/전국 유명사찰 탐방

광주 증심사

 

광주 무등산의 서쪽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증심사(證心寺)간혹 옛 기록에는 징심사(澄心寺)라고도 했지만,요즘은 증심사라고 부른다. 헌인왕4년(860) 철감국사가 창건하였고,고려 때 혜조국사가 중창하였다. 조선 세종 때 김방(金倣)이 중창 하였는데,이때 오백나한이 조성되었다고 한다.정유재란 때 불탔고,광해군 때 또다시 대규모의 중수가 있었다.

일제 때는 이 절이 한국불교의 정통임을 자부하는 도량이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한­일 불교 의 공동원류설이 제창된 적이 있다. 두말할 나위없이 내선일치(內鮮一致)라는 식민지 문화정책의 발로였다.
이때 만해 한용운 등은 한국과 일본 불교의 뿌리는 전혀 다르다는 논지를 폈다. 즉 일본의 경우 염불종, 조동종 등이 주류를 이루면서 신도(神道)와의 융합이 이루어진 반면, 한국은 임제선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이 주류였다는 주장이다. 그때 임제종 운동을 펼친 본거가 바로 증심사였다.

1951년 6· 25 전란으로 대부분 건물들이 불타 없어졌다.1970년 이후 활발한 복원작업을 펼쳐 지장전­비로전­적묵당 등을 새로 건립하였다. 다행히 참화를 피한 오백전이 유일한 조선조의 건물인 셈이다.

오백전은 1443년 김방이 오백나한과 십대제자를 봉안하였고 국가와 백성들의 평안을 기원한 곳이다.
앞과 옆이 모두 3칸인 맞배지붕이다. 둥근 기둥 위에 공포를 만들었고,천장에 별다른 장치가 없다. 이 점은 강진 무위 사의 경우와 흡사하다.

그외 석물로서 주목을 끄는 것들로는 석조보살 입상과 삼층­오층석탑 등이 있다. 석조보살상은 오백전의 남쪽에 있다. 대좌는 원형으로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보살상의 머리부분은 원통형의 보관을 씌웠다. 대부분 보살상은 화관에 구슬이나 작은 불상의 조각들을 새기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형태는 매우 드문 예이며 월정사의 약왕보살 정도가 이와 흡사하다. 그러나 오히려 단순­소박미가 돋보이는 느낌을 받는다. 얼굴모습은 상당히 이국적이다. 즉 타원형이며 갸름해서 인도불상을 연상케 한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선명하고 목걸이를 장식하였다. 원래 증심사에 있었던 불상은 아닌 듯싶다. 사중 스님들이 전하는 말로는 담양군 서봉사지(瑞鳳寺地)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조선 초기작품으로 추정되며 전체 높이는 2m 정도이다.

오백전 앞의 삼층석탑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석물로 믿어진다. 지붕돌과 면석을 통돌로 조성했으며, 네 귀퉁이에는 우주(隅柱)를 나타낸다. 지붕 돌의 받침은 모두 네개이다. 지붕돌의 끝을 아주 심할 정도로 치올렸다 . 그 결과 작은 탑이지만 매우 날렵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체 높이는 3.2m,조형수법으로 보아 신라탑이 틀림없다. 신라 말엽의 작품이리라 짐작된다. 오층석탑은 대웅전 앞에 있다. 형식은 삼층석탑과 같으나 옥개(屋蓋)받침이 3층 혹은 2층으로 낮아졌다.

1933년 탑을 수리할 때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1950년 한국전쟁 당시 망실되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 탑의 중심에서 칠(漆)상자가 나왔다. 그 안에는 금동석가 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이 있었다. 그밖에도 철제 오층탑,철제 불상 2 구,수정,옥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석가상과 보살상은 매우 뛰어 난 형태여서 각각 국보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불보살상 2구는 한국 전쟁 직전에 문화재 보호를 위해 광주경찰서로 이관되어 금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곧이어 전쟁이 터지고 혼란이 가중되던 즈음 행방불명된 상태 이다.


또 비로전에 모셔진 철조비로자나불좌상도 주목되는 문화재이다. 상호(相好)는 원만하면서도 근엄하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였고,손 모습은 지권인(智券印)이다. 흔히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쥐는 형태를 말한다. 부처님의 손모습은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그것은 각 각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유아불인 경우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은 땅을 가리킨다. 이것은 싯다르타 태자의 선언인 「천상천 하유아독존」을 나타낸다. 또 오른손을 들고 왼손은 무릎에 얹거나 땅을 가리킨다. 이것은 석가가 성도(成道)한 직후 대지의 악마 마라(Ma ra)에게서 항복을 받았다는 상징이며 흔히 항마인(降魔印)이라고 한다 . 이 지권인은 법계(法界)가 일심(一心) 속에 있다는 의미이다.

법 이라는 용어는 다르마(Dharma),즉 현상을 가리키며 계(界)는 다 투(Dhatu),즉 존재자를 말한다. 즉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있 는 모든 존재,우주를 뜻한다. 이 우주의 근원은 바로 일심 그 지극한 마음으로부터 삼라만상이 출현한다는 의미이다. 다만 이곳의 불상은 거 꾸로 오른손 검지를 왼손이 감싸안은 모습이다. 이 불상의 출처는 불분 명하다. 광주 시내의 폐사지에서 옮겨 왔다고도 하고,일설에는 광산군에 있는 대황사(大皇寺)라는 절에서 옮겨왔다고도 하는데,확실하지 않다. 현재 보물 제31호. 조성연대는 고려 말기쯤일 것으로 보인다.

그 외 범자(梵字)가 새겨진 칠층석탑과 부도(浮屠) 등이 눈여겨볼 만한 유물들이다. 흔히 범자칠층석탑이라고 하는데 「옴마니밧메훔」이라는 진언 (眞言)이 새겨 있다. 이곳의 부도전에는 도합 5기의 부도와 17기의 비석이 있다. 월감당(月嵌堂) 부도는 숙종41년(1715)에 세워진 것이고,그 오른쪽에는 수월당(水月堂)의 부도가 있다. 비석은 거의 대부분 시주자들의 공덕을 기린 비문들이다.

증심사는 비록 한국동란 때 원형을 잃어버렸다고는 하지만 광주지역의 대표적 사찰로 손꼽힐 만하다. 무등산이라는 빼어난 산세의 중심에 있을뿐더러 오랜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호남의 빼어난 명승으로 꼽았 으며 「광주읍지」 등에도 무등산의 정기를 함축하고 있는 곳이라고 찬탄 하였다. 지금의 건물들은 1971년에 중창된 것이 대부분이다. 역사성을 고려하여 증심사 일원은 모두 광주광역시 문화재 1호로 지정된 바 있다.

터가 반듯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사진 땅에 석축을 쌓고 그 몇 개의 단으로 나누어진 곳에 여러 건물들을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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